허암 정희량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97년 예문관 대교때 연산군에게 경연에 충실할 것과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일 것을 상소하여 왕의 미움을 샀다. 이후 무오사화때 탄핵을 받고 의주로 유배, 다시 김해로 이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서곶 검암동 허암산에 은거하다 연산군에게 알려지면 불리할 것을 알고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정희량은 차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한 경지에 있는 것을 즐겨서 ‘야좌 전차’라는 시에 차를 다리고 즐기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지금도 다도와 관련된 글에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